공부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늦게 알았습니다
처음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무렵, 제 관심은 오롯이 학습과 습관에 쏠려 있었습니다. 글씨를 바르게 쓰는지, 수학 문제를 정확히 푸는지, 책은 잘 읽는지. 물론 아이의 학업을 걱정하는 건 모든 부모가 겪는 자연스러운 마음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와 말없이 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저녁 나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 때 저는 작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왜 기분이 안 좋아?”라고 물었지만, 아이는 “몰라. 그냥...”이라는 대답만 남겼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고민에 빠졌습니다. 아이가 무엇이 힘들었는지조차 모르고 있는 내 자신이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아이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고 속으로만 삭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저는 비로소 ‘정서 교육’의 필요성에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오늘 이글에서는 제가 아이를 키우면서 깨달은 "공부보다 더 중요한 건, 아이가 자기 마음을 이해하고 말할 수 있는 힘"이라는 생각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자 합니다.
감정 표현은 ‘타고나는’ 게 아니라 ‘배우는’ 것입니다
아이에게 “기분이 어때?”라고 물어본 적이 있나요?
우리는 어른이 되면 감정을 알아서 조절하고 표현할 줄 안다고 착각하지만, 사실 그 능력은 어릴 때부터 서서히 배워야 합니다. 초등학교 시기의 아이들은 다양한 감정을 느끼지만, 그것을 말로 풀어내는 능력은 아직 미숙합니다. 슬퍼도 “짜증 나”라고 말하고, 무서워도 “몰라”라고 넘기기 일쑤입니다.
이럴 때 부모가 해야 할 일은 아이에게 감정을 알아채고 이름 붙일 수 있는 언어를 제공해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오늘 친구가 말 안 걸어서 속상했어?” 혹은 “그럴 땐 기분이 좀 슬펐겠다”라는 말은 아이가 자기 안의 감정을 인식하는 데 큰 도움을 줍니다. 감정은 알아야 표현할 수 있고, 표현할 수 있어야 조절도 가능합니다.
감정 교육은 아이의 인생을 지탱하는 내면의 기둥입니다
정서 교육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단순히 감정을 다루는 기술을 넘어서 아이의 자아와 삶의 질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감정 표현이 서툰 아이는 친구 관계에서도 자주 갈등을 겪고, 어려운 감정이 생겼을 때 도망치거나 분노로 터뜨리는 방식을 택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반면 감정을 잘 인식하고 표현하는 아이는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건강한 경계를 만들고, 스트레스를 스스로 다루는 힘을 가집니다. 초등 시기의 정서 교육은 단순히 ‘지금의 평안’을 위한 것이 아니라, 평생의 정서적 회복탄력성을 기르는 기초가 됩니다.
감정을 받아주는 부모가 아이를 성장시킵니다
“그 정도로 울 일이야?”는 아이를 더 작게 만듭니다
아이들이 느끼는 감정의 크기를 우리가 결정할 수는 없습니다. 어른의 눈에는 작은 일일지라도, 아이에겐 그것이 세상의 끝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좋아하는 스티커를 잃어버린 일, 친구가 놀아주지 않은 일 등은 어른에겐 사소하지만 아이에겐 중요한 경험입니다. 이때 “그까짓 걸로 왜 그래?”라는 말은 아이의 감정을 억누르게 만들고, 점차 마음을 닫게 만듭니다.
부모가 해야 할 일은 판단이 아니라 ‘공감’입니다. “정말 속상했겠다”, “그럴 때 엄마도 마음이 아플 것 같아”라는 말은 아이에게 감정을 표현해도 안전하다는 신호가 됩니다. 감정을 받아주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는 스스로를 더 신뢰하고, 타인의 감정에도 민감해지는 따뜻한 공감력을 키우게 됩니다.
조언보다 먼저 필요한 건, ‘기다림’입니다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환경이 되려면, 부모의 반응 속도도 달라져야 합니다. 아이가 눈물을 흘릴 때, 바로 해결책을 제시하는 대신, 그저 옆에 앉아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때가 많습니다. 저 역시 아이가 시험을 망치고 울 때 “다음에 잘하면 되지”라고 말하고 싶었던 걸 꾹 참았습니다. 대신 “마음이 많이 속상하구나. 엄마 여기 있을게”라고 말했습니다.
몇 분의 침묵 후 아이는 울음을 멈추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엄마는 내가 울어도 안 혼내서 좋아.” 그 말 한마디에 저는 아이가 진짜로 원했던 건 위로였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집안의 감정 분위기는 부모가 만듭니다
감정이 건강한 집은 아이의 ‘심리적 집’이 됩니다
가정은 아이에게 가장 처음 만나는 사회입니다. 부모가 감정을 솔직하게 나누고, 서로를 존중하며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여줄 때, 아이는 그런 분위기 속에서 안전함을 느낍니다. “우리 집에서는 울어도 돼”, “속상한 일은 말해도 돼”라는 메시지를 전해주는 공간은 아이에게 ‘감정적으로 쉬어갈 수 있는 집’을 만들어줍니다.
이런 분위기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지만, 부모가 매일 조금씩 감정을 나누는 습관을 들이면 점차 형성됩니다. 예를 들어 “오늘 엄마도 회사에서 속상한 일이 있었어. 근데 너랑 저녁 먹으니까 좀 괜찮아졌어”라는 말은 아이에게 감정은 나누는 거라는 걸 자연스럽게 알려주는 메시지가 됩니다.
부모의 감정 조절이 최고의 정서 교육입니다
우리가 자녀에게 바라는 모습은 대부분 ‘스스로 조절하는 아이’입니다. 하지만 조절이라는 건 말로 배우는 게 아니라 ‘보여짐’으로 배우는 것입니다. 부모가 화가 났을 때, 그 감정을 어떻게 다루는지, 실망했을 때 어떤 말과 표정을 선택하는지를 아이는 다 보고 있습니다.
아이 앞에서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되, 그것을 공격적인 방식이 아닌 성숙하게 다루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그것이 곧 아이에게 감정을 다루는 가장 좋은 수업이 됩니다.
아이의 감정을 길러주는 건, 결국 부모의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우리는 아이가 더 똑똑해지길 바라며 많은 시간을 투자합니다. 하지만 정작 아이가 자기 마음 하나 표현하지 못하고, 작은 갈등에도 무너지는 모습을 보게 될 때, 진짜 중요한 게 무엇인지 되묻게 됩니다. 정서 교육은 그 어떤 학습보다 먼저 자리 잡아야 할 ‘삶의 기초’입니다.
아이의 감정은 부모의 품 안에서 자랍니다. 감정을 드러낼 수 있는 집, 표현해도 괜찮은 관계, 실패해도 혼나지 않는 분위기. 그런 환경 속에서 아이는 자기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타인을 이해하는 능력을 키웁니다.
그래서 오늘도 저는 아이에게 묻습니다.
“오늘은 어떤 기분이었어?”
그 질문이 우리 사이를 이어주는 가장 따뜻한 다리라는 걸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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